공생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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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복지재단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입니다.

 

  한국역사가 덧없이 흘러가던 시절, 1928

12살 시골 소년 윤치호

YMCA 야학부 「목공과」를 다니면서

예수님의 삶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 저도 이웃을 위해 사는 나사렛 목수가 되고 싶어요,'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기도응답으로 목포 호남동에 나사렛 목공소⌟ 를 세웠을 때

목포의 냇가 다리 밑에서 7명의 고아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거지대장이 된

12살 소년의 눈물의 기도⌟ 로 시작된 것이

오늘의 ​공생원⌟ 입니다.

    

  거지대장 혼자서는 늘어나는 숫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당시 정명여학교 음악교사였던 일본인

다우치 치즈코가 공생원 일을 도우면서 두 사람은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전이 한창인 와중에 윤치호는 행방불명되었고

남편을 기다리던 윤학자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3천 여 명의 고아들을 내 자식처럼 길러내면서

공생원을 지켜냈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숭고하고 헌신적인 일본 여인에게

한국 정부는 문화훈장, 일본 정부는 남수포장을 수여하고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 어머니의 탑을 세워 평생의 공적을 기리면서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윤학자 여사가 가시던 날 목포는 울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살던 어머니의 자랑스런 자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모두가 목 놓아 슬피 울어 유달산의 메아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명복 빌어 최초 목포시민의 장으로 모셨습니다.

 

  어머니의 유지와 덕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윤 기

재일 동포 고령자들의 안식처인 고향의 집을 건립하여

가장 낮은 곳에서 한일 양국관계 개선위해 혼신을 다하여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분야의 선구적인 역할은 물론

UN 세계 고아의 날제정 청원 운동에 주도적으로

앞장서 공생의 길로 인도하는 헌신적인 마음과 뜻에

우리 모두 공감과 동참으로 힘을 모아 나갑시다.

 

  공생은 모두가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아량 이상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 줄 철학이 또 무엇 있겠는가?

응원하고 후원하면서 아름다운 흔적을 쌓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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